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독립 전쟁 (문단 편집) === 비판적 평가 ===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관점의 역사에서는 영국 정부의 탄압[* 이때 자주로 예시를 드는게 그 유명한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다.]에 대항한 정착민들의 고결한 항쟁으로 묘사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단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그 외 현재 [[미국 의회]]의 뿌리가 된 식민 의회(Continental Congress)의 회원들은 각 지역사회 내지는 사회계층을 대표할만한 (전직)정치인 내지는 군인, 재력/사업가 등 소위 "지식인" 계층들이였으며, 어떤 식으로든 본국인 영국과 깊은 연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여러 출신과 국적의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자리 잡으면서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얕아지고, "아메리카 정착민"의 정체성이 확립하던 시기에, 영국 정부의 조세 정책에 '''이권이 약해진 것에 빡친 사람들이 자기들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는 생각에 '자주권을 위한 혁명' 프레임을 명분삼아 정착민들을 선동해서 벌인 내전'''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 관점에서 <상식론>은 본격적으로 독립주의/공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전쟁으로 치닫게 한 훌륭한 선전물이였고, 내용 자체도 시작은 "영국의 정책은 부당하고 세습군주제가 어쩌구.." 하다가 결론은 "여기 자원이면 충분히 영국하고 맞장떠서 이기고 먹고살기 충분하다. 맨날 영국한테 삥뜯기면서 살바에는 그냥 독립하는게 낫다"라는 식으로 끝낸다. 애초의 책 자체도 책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할 정도로 짧고 선전용 팸플릿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 전쟁 발발 조짐이 보이기 전부터 영국 국왕과 식민 의회의 주된 대립은 "당신네들 보호 및 자치권 보장을 위해 전쟁을 했으니 세금을 좀 더 내시오"에 대헤 일방적인 "부당한 조세정책 철회하라!" 가 아니라, "우표나 차같이 쌩뚱맞은걸로 식민령에나 때릴 관세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하지 말고 사람 보내줄태니 조세를 하더라도 제발 우리 피드백좀 받아서 현실적인 정책을 가지고 와라"가 "No taxation without represntation"의 주된 골자였다.[* 식민 주민들도 멍청이들도 아니였고, 애초에 영프 전쟁의 제 1 전선이 북쪽의 영프간 식민지 경계였다. 북부에서는 병력까지 자원해서 나갔고 남부 식민지들도 조금이나마 물자 지원/징발도 있었다. 그래서 대륙 의회와 독립전쟁의 대의명분과 배경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영국이 무리하게 조세를 감행한 시점부터 이미 힘의 균형 공백이 발생했음을 인지하고 불공정한 조세 등의 트집삼아 독립을 하겠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게 아니였겠냐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 영미 역사책에서는 잘 안다뤄지지만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영국 본토에선 독립선언문(=선전포고문)을 아직 받지 못했으므로) 온건파가 주도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쉽게말해 "우리도 영국인이니 아무리 명목상 식민지라지만 같은 백인들끼리 이러지는 맙시다"(식민지 야만인 취급은 하지 말아달라)라는 뜻이였다. 상황이 전쟁으로 격화된 것도 "같은 영국인들끼리 좀 잘해보자"고 대륙 측에서 먼저 나왔는데 더 강압적으로 나오니까 "끝까지 야만민족 대하듯이 [[포함외교]]로 나오겠다는거지? 그럼 총칼로 승부 봐야지"라는 명분을 만들어준 꼴이였기 때문이다.[* 자꾸 외국인 취급할거면 그냥 진짜로 독립해버리고 그 다음 상황에 대해선 니들 항상 하듯이 총칼로 해결보겠다는거다.] 흔히들 알고 있는것과는 다르게 본격적인 전쟁으로 격화되기 전 [* 정확히 말하자면 토마스 페인의 <상식론>의 출간 이전까지] 아메리카 이주민들이 주장하던 "자유" 혹은 "평등한 대우" 는 어디까지나 "전제군주에 대한 거부" 내지는 "공화정의 필요성" 같은 이념적 논리가 아니라 "같은 영국인으로서 대우받을 권리"를 이야기 하는거였다. 게다가 이 <상식론>도 민주정이 보편화된 지금에서야 상당히 선진적인 매체로 보이겠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급진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이념의 선동물이였고, 식민 주민들은 여기에 열광해서 너도나도 총을 잡고 항전을 결의한 계기가 됐다. [*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국주의적 정책이 역으로 튄 뒤 자신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칭 대테러 문명사회 세력의 맹주를 자처하는 미국은, 본인들도 이념적 극단주의에 기반한 비정규전 반란(Insurgency)을 통해 건국된 나라임을 망각하는 듯 하다"는 말을 (주로 영미권 밖의) 역사/정치 논객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독립을 위한 전쟁"이 되었지만 전쟁 중기까지만 해도 비록 "독립선언문" 이라는 선전포고를 하기는 했어도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는 차원의 식민지 주민들의 실력행사/반란'의 성질이 더 짙었다. [* 그리고 이런 영국 정부의 실책으로 영국 정부와 식민지 백인들과의 충돌은 추후 100년뒤 [[보어 전쟁]]으로 또다시 반복된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프랑스로부터 지키려고 영국이 무리해서 경제력(즉, 국력)을 소진하는 바람에 힘의 공백이 생긴 틈에 '''"이참에 한번 독립해서 부와 힘을 키우자"'''는 암묵적 동의 하에 식민지 지배층이 벌인 분리주의 내전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한계는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여러 [[시민혁명]]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식민지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서서히 보일 적부터 영국군에서 일찍이 퇴역한 조지 워싱턴이 영국군 정복을 입고 식민 의회에 출석했다는 일화가 있다. 분리전쟁을 전제로 하고, 그때 군사 지휘를 해서 새로 설립되는 질서에서 한가닥 잡으려 했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그도 이 무력충돌의 결과로 새로운 독립 국가가 생기거나, 자신이 최초의 국가원수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냥 역사책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명예를 챙긴 뒤 조용하게 생활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는게 보편적인 견해다.] 당장 전쟁 직후 독립된 미 식민지는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개입 없이는 전제 군주제 내지는 각 주의 대표들이 선출한 왕이 다스리는 입헌 군주정 국가로 갈 뻔 했다. 엄청난 인기로 인해 어어하다 초대 왕이 될 찰나 조지 워싱턴이 죽어도 국가 원수는 하기 싫어서 선출된 의회와 국가원수가 이끄는 공화국가로 가야 한다고 건국의 아버지 및 다른 식민 의회 양반들을 어찌어찌 설득해서 결국 공화정 국가로 건국은 했는데, 투표에서 선출당해버려(…) 임기 두번 마치고 사임했다. 당대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목표가 현실에 부딪혀 흐지부지된 것들도 상당 부분 있다. 독립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토머스 페인]]만 하더라도 계급을 비롯해 인종, 민족, 종교, 성 차별을 모두 타파하고, 보편 복지의 필요성까지 역설했는데, 미국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저 문제들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고, 심지어 이권 문제와는 거리가 먼 공화국 건국이란 목표도 개인의 영향력 기대어서 겨우겨우 해결한 수준이었다. [* 토마스 페인이 현세 기준으로는 제일 선진적이고 깨어있는 지식인이였지만 그시절엔 애초에 독립파중에서도 제일 급진적인 이단아로 이미 낙인 찍힌 상태였다. <상식론>도 이사람 작품인걸 기억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그와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은 그나마 (다행히) 조지 워싱턴이였고, 건국 후 바통터치를 받아서 겨우겨우 공화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한다. ] 이러한 시각에서 발전하여 미국 혁명의 혁명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이에 의하면 [[혁명]]이라고 하면 말그대로 사회적이든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무엇인가 혁명적인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 독립전쟁은 말그대로 일개 [[식민지]]가 경제적 원인을 주요 요인으로 한 독립 전쟁에 불과하는 것이다. 최소한 혁명으로 불리려면 [[영국]]의 [[청교도 혁명]]처럼 왕당파로 불리는 구 귀족체제에서 의회파로 대변되는 시민세력으로 정치세력이 변동되고, 이로인해 영국의 경제정책이나 기타 정책들이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격변하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부분을 잘 꾀뚫는 미국인들도 영국이란 체제를 통째로 엎은거는 아니고 그냥 이주민들이 유혈저항으로 독립한 뒤 새로운 공화국을 채웠다는 점을 중시하면서 주로 보수측에서 미국을 "The American Experiment"라고 부르곤 한다. [* 반대로 소련은 흔히 "Communist Experiment"라고 부른다. 미국인들, 특히 보수권이 소련과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이유중 하나가 미국은 사회경제학적 이유로 독립하고 별도의 정치체계를 구성한 신생국인 반면, 소비에트 연방은 어찌됐든 진정한 '혁명'으로 기존 체제를 엎은 나라기 때문이다. 자국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메카시즘]]이 흥한 것이였다.] 완전무결의 이념적 혁명이 아니라 우리들끼리 먹고살겠다고 냅다 독립한게 지금까지도 이어지다가 어쩌고 보니 최강 패권국이 됐다는거고, 중대한 사유가 없는한 현재의 체제를 버려선 안된다는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